형사

사람이 없어도 멈춰야 할까 — 횡단보도 앞, 보행자 보호의무의 경계

2026.07.27

사람이 없어도 멈춰야 할까 — 횡단보도 앞, 보행자 보호의무의 경계

요즘 운전자들 사이에서 부쩍 조심스러워진 게 횡단보도입니다. "보행자가 우선"이라는 말은 익숙한데, 막상 운전대를 잡으면 애매한 순간이 한둘이 아니죠. 사람이 아직 인도에 서 있기만 해도 멈춰야 하는 건지, 반대로 빨간불에 갑자기 뛰어든 사람을 피하지 못했을 때도 온전히 내 책임인지. 이 의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 의무인가

 

기본 골격은 이렇습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 운전자는 그 앞(정지선이 있으면 정지선)에서 일시정지해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협해선 안 됩니다(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 그리고 이 의무를 어기고 사고를 내면 12대 중과실에 해당합니다(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2항 단서 제6호). 즉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거나 피해자와 합의했더라도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유형이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건너려는 사람'까지 멈춰야 합니다

 

여기서 최근에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보행자가 실제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만 멈추면 됐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없으면 우회전 차량이 그냥 지나가도 문제가 없었죠. 그런데 2022년 개정으로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뿐 아니라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도 일시정지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아직 발을 내딛지 않고 인도에서 건너려는 자세로 기다리는 사람만 있어도 일단 멈춰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횡단보도 주변에 건너거나 건너려는 사람이 아예 없다면 서행하며 통과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어린이보호구역에 설치된 신호기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는 보행자가 없더라도 무조건 한 번 멈춰야 합니다.

 

그렇다면, 빨간불에 무단횡단하는 사람은?

 

반대편 오해도 짚어야겠죠. 보행 신호가 빨간불인데 무단으로 뛰어든 사람을 미처 피하지 못한 경우, 이것도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이 될까요.

 

대법원은 보행 신호가 적색인 상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에 대해서는, 도로교통법 제27조가 정한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1도2939). 신호를 지켜 건너는 사람을 전제로 한 의무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런 상황은 12대 중과실 중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여기서 안심하시면 곤란합니다. 이 경우에도 운전자에게는 전방을 잘 살피고 사고를 피해야 할 일반적인 주의의무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주의의무를 게을리했다면 과실 책임을 질 수 있고, 사람을 다치게 한 이상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다만 12대 중과실이 아닌 일반 교통사고로 다뤄져, 보험·합의로 형사처벌을 면할 여지가 생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고가 나면 어떤 책임이 따르나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보호의무를 어겨 사람을 다치게 하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으로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고(형법 제268조), 벌점과 면허 정지·취소 같은 행정처분도 함께 따라옵니다. 보행자는 사고가 나면 곧바로 큰 부상으로 이어지기 쉬운 만큼, 법원도 이 유형을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핵심만 다시 추리면, 이제는 건너는 사람뿐 아니라 건너려는 사람 앞에서도 멈춰야 하고, 어린이보호구역의 신호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사람이 없어도 일단 정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반대로 신호를 무시한 무단횡단처럼 예외가 인정되는 국면도 있지만, 그 경계는 결국 신호 상태와 사고 당시 정황에 따라 갈립니다.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블랙박스 영상과 신호 상황을 초기에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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